버튼 하나만 누르면 소설을 쓰고, 명령어 한 줄에 그림을 그려내는 생성형 AI의 시대. 우리는 기술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불편한 질문 하나를 품게 됩니다. "이 창작물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뉴욕타임스가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전 세계의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AI 기업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지금, '챗GPT는 저작권 도둑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 논쟁은 단순히 기술과 법의 충돌을 넘어, 창작의 본질과 인간의 역할, 그리고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1. AI의 학습은 '학습'인가, '무단 복제'인가?
생성형 AI 저작권 논쟁의 가장 근본적인 첫 번째 쟁점은 바로 AI를 훈련시키는 '학습 데이터'에 있습니다. 챗GPT와 같은 거대 언어 모델(LLM)이나 미드저니 같은 이미지 생성 AI는 인간과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에 존재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합니다. 여기에는 뉴스 기사, 블로그, 책, 논문, 그리고 수많은 이미지와 예술 작품이 포함되며, 그중 대다수는 엄연히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창작물입니다. AI 기업들은 이러한 과정을 인간이 책을 읽고 지식을 쌓는 '학습'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저작물을 비상업적 연구나 비평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 침해의 예외를 인정하는 '공정 이용(Fair Use)' 원칙에 해당한다고 항변합니다. 즉, AI가 특정 저작물을 그대로 복제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과 스타일을 익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들은 AI의 학습 과정이 수십억 개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제'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 행위라고 반박합니다. 인간의 학습은 뇌 속에서 추상적으로 이루어지지만, AI의 학습은 명백한 '복제'와 '저장'이라는 물리적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내 평생의 노력이 담긴 창작물이 아무런 동의나 대가 없이 거대 기업의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사용되고, 종국에는 나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결과로 돌아오는 현실에 창작자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학습'과 '복제' 사이의 이 팽팽한 줄다리기는 AI 시대의 저작권법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입니다.
2. AI가 만든 창작물, 그 주인은 누구인가?
두 번째 쟁점은 AI가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의 저작권을 누가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미드저니에 "노을 지는 해변에서 고독을 느끼는 반 고흐 스타일의 우주비행사"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해 그림 한 장을 얻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그림의 저작권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프롬프트를 입력한 '나'? AI 모델을 개발한 'AI 기업'? 아니면 AI 모델을 학습시킨 수많은 원작자들? 혹은, 아무에게도 저작권이 없는 것일까요? 현재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의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 대해서만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창의적인 개입 없이 AI가 스스로 생성한 결과물은 원칙적으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최근 우리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 역시, AI를 '도구'로 활용하여 인간이 '창작적인 수정과 편집'을 가했을 경우에만 그 부분에 한해 저작권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프롬프트를 단순히 입력하는 행위만으로는 창작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과 AI의 공동 창작이 더욱 복잡하고 정교해질수록 이 경계는 더욱 모호해질 것입니다. 인간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발전시키는 AI의 역할이 커질수록, 우리는 '창의성'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3. 기술과의 상생을 위한 노력: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는 지금 해법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AI 법(AI Act)'을 통과시키며, AI 기업이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의 저작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이는 창작자들이 자신의 저작물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파악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입니다. 또한, 일부 언론사나 이미지 플랫폼들은 AI 기업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여 자사의 콘텐츠를 학습 데이터로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창작자들이 자신의 저-작물이 AI 학습에 사용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옵트아웃(Opt-out)' 기술 표준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이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며, 모든 창작자에게 공정한 보상이 돌아가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기술의 방향은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AI가 인간의 창작성을 대체하는 '경쟁자'가 아닌, 창작 활동을 돕고 영감을 주는 '파트너'로서 공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챗GPT는 저작권 도둑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고 명쾌하게 답하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현재의 법과 제도는 AI라는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기술과 창작의 경계에서 우리는 전에 없던 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AI 시대의 새로운 창작 윤리와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기술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면서도, 인간의 창의적인 노력이 정당하게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민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