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전세사기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

by 덴므 2025. 9. 2.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은 돈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보금자리의 꿈이 담긴 돈. 대한민국에서 ‘전세 보증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미래가 얹어진 무게를 갖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담보로 한 악질적인 범죄, 전세사기가 2025년 지금 이 순간에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빌라왕’, ‘건축왕’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고,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은 비웃기라도 하듯 변함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왜 이토록 명백한 범죄는 뿌리 뽑히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는 걸까요. 이는 단순히 사기꾼 몇몇이 유별나게 악랄해서가 아닙니다. 사기꾼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구멍이 숭숭 뚫린 법과 제도, 그리고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꾸기조차 어려운 청년들의 절박함을 파고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촘촘한 거미줄처럼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기인 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을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임대차 계약은 언뜻 평등해 보이지만, 사실상 임차인이 절대적인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집주인은 해당 건물의 시세는 물론, 얼마의 빚(선순위 근저당)이 있는지, 체납한 세금은 없는지 등 모든 정보를 손바닥 보듯 꿰고 있습니다. 반면, 세입자가 계약 전에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물론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건축물대장을 확인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계약 당일에는 깨끗했던 등기부등본이 잔금을 치르는 날 집주인이 대출을 받는 동시에 전입신고를 하는 ‘동시진행’ 수법 앞에선 휴지 조각이 되기 일쑤입니다. 더 악질적인 것은 집주인의 ‘체납 세금’입니다. 국세나 지방세 체납액은 보증금보다도 우선 변제 대상이라 매우 치명적이지만, 현행법상 임대인의 동의 없이는 세입자가 그 내역을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세입자는 깜깜이 상태에서 수억 원의 돈을 맡겨야 하는 ‘도박’을 하는 셈입니다.

안전장치는 어떻게 사기꾼의 미끼가 되었나

“HUG 전세보증보험 가입되니까 100% 안전해요.”

아이러니하게도,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HUG(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보험이 지난 몇 년간 사기꾼들의 가장 강력한 ‘미끼’로 활용됐습니다. 사기꾼들은 시세 파악이 어려운 신축 빌라의 매매가와 전세가를 동일하게 부풀리는 ‘깡통전세’ 수법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불안해하는 세입자에게 “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으니 문제 생겨도 나라에서 돈 다 돌려준다”며 안심시킵니다.

실제로 문제가 생기면 HUG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대신 돌려주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바로 이 점을 악용했습니다. 어차피 자신들은 보증금을 떼먹고 잠적하면 그만이고, 뒷수습은 국가(HUG)가 알아서 해줄 테니 오히려 마음 놓고 사기를 칠 수 있는 ‘판’이 깔린 것입니다. 결국, 세입자를 보호해야 할 안전장치가 사기꾼의 리스크를 없애주는 ‘보험’ 역할을 해준 셈입니다. 최근 가입 요건이 까다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이미 터진 시한폭탄의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가 떠안게 되었습니다.

2025년, 사기 수법은 어떻게 진화했나

‘빌라왕’ 사건 이후, 사람들은 신축 빌라를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기꾼들은 곧바로 타겟을 바꿨습니다. 오피스텔이나 대단지 아파트의 갭투자를 이용한 신종 사기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또한, ‘컨설팅 업체’라는 허울을 쓴 불법 조직을 여러 개 만들어 ‘바지 집주인’을 내세우고,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한두 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수십, 수백 채를 동시에 터뜨려 피해 규모를 키우고, 복잡한 법인 구조 뒤에 숨어 추적을 어렵게 만듭니다.

정부가 내놓은 ‘안심전세 앱’ 같은 대책들도 현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앱에 등록되지 않은 매물이 훨씬 더 많고, 시세 정보 역시 아파트에 비해 비아파트는 여전히 부정확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도는 범죄의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 틈새에서 벌어지는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과 서민들의 몫으로 남게 됩니다.

전세사기는 단순한 사기 사건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명백한 ‘사회적 재난’입니다. ‘조심하지 않은 네 탓’이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기 전에, 왜 이런 재난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인 원인을 직시해야 합니다. 사기꾼들이 더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의 구멍을 촘촘히 메우고,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것. 그것이 끝나지 않는 전세사기의 악몽을 멈출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