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 대학이 문을 닫는다.’
몇 년 전부터 흉흉하게 떠돌던 이 예언은, 2025년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괴담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남쪽 지방부터 시작된 신입생 미달 사태가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북상하며, 수많은 지방 대학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몇몇 대학의 부실 경영 문제가 아닙니다. 끔찍한 속도의 인구 절벽과 모든 것이 서울로만 통하는 기형적인 수도권 집중화가 만들어낸, 예고된 사회적 재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그저 ‘지방에 있는 대학들 힘들겠다’ 정도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수험생과 대학 관계자들만의 비극이 아닙니다. 하나의 대학이 사라지는 것은, 하나의 도시가 소멸하고, 한 지역의 미래가 통째로 증발하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지방 대학의 위기는 이미 우리 모두의 생존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경고등을 켠 채 달려오고 있습니다.
정원 미달 사태, 숫자로 보는 처참한 현실
이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숫자에 있습니다. 바로 ‘학령인구의 붕괴’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은 약 44만 명이었지만, 2040년이 되면 고3 학생 수는 20만 명대로 반 토막이 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런데 현재 전국의 대학 입학 정원은 40만 명이 훌쩍 넘습니다. 간단한 산수만 해봐도 끔찍한 결론이 나옵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모든 학생을 다 합쳐도 전국의 대학 정원을 채울 수 없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 무자비한 ‘의자 뺏기 게임’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는 것은 지방 대학일 수밖에 없습니다. ‘In 서울’ 대학에 대한 선호는 단순히 ‘명문대’ 선호를 넘어, 양질의 일자리와 문화, 사회적 네트워크가 수도권에 압도적으로 집중된 현실에 대한 젊은 세대의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수험생들은 어떻게든 서울·수도권 대학으로 가려 하고, 그곳에서 밀려난 학생들이 마지못해 지방 거점 국립대로, 그리고 그마저도 안 되면 지방 사립대로 향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있는 지방의 중소 사립대학들은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해 ‘자발적 폐교’가 아닌 ‘강제적 소멸’의 길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한때 수천 명의 학생으로 북적였을 캠퍼스는 이제 텅 빈 유령 건물로 변하고, 강의실에는 교수님보다 학생 수가 더 적은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기숙사는 불이 꺼진 채 방치되고, 대학 앞 상권은 ‘임대 문의’ 종이만 나붙은 채 흉물스럽게 변해갑니다.
대학이 사라지면, 도시가 사라진다
하나의 지방 대학은 단순히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이 아닙니다. 그 대학이 위치한 지역 사회의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큰 ‘심장’이자 ‘엔진’입니다. 수천 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은 그 도시의 가장 큰 소비자 집단입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돈이 도시 전체의 상권, 즉 원룸촌 임대업, 식당, 카페, 복사집, 서점 등을 먹여 살립니다. 대학 축제는 지역 주민 모두가 즐기는 가장 큰 문화 행사이며, 대학의 젊음과 활기는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밝게 만듭니다. 즉, 대학은 지역의 ‘인구 유입’과 ‘경제 순환’, 그리고 ‘문화 형성’의 핵심 축입니다.
하지만 대학이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될까요? 학생과 청년들이 사라진 도시는 급격히 활력을 잃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원룸촌은 빈방으로 가득 차고, 대학가 상권은 줄줄이 폐업합니다. 일자리가 사라지니 남아있던 청년들마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도시에는 노년층만 남게 됩니다. 이는 곧 도시 전체의 세수 감소와 인프라 붕괴로 이어져, 도시 자체가 소멸하는 ‘지역 소멸’의 악순환을 가속화합니다. 결국 지방 대학의 폐교는 그 지역 청년들의 미래를 빼앗는 것을 넘어, 도시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비극인 셈입니다.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바로 ‘지방 대학의 위기’라는 가장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현실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정부 대책의 한계와 미래
물론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년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부실 대학’의 연명을 돕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독려하며 급한 불을 끄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재정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임시방편일 뿐이며, 외국인 유학생 유치 역시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 채 정원을 채우기 위한 ‘숫자놀음’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일부 대학의 안일한 태도 역시 문제를 키웠습니다. 위기를 마주하고도 뼈를 깎는 혁신 대신,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며 변화를 거부해 온 대학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전문가들은 이제 ‘모든 대학을 살린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각 대학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강점을 살려 ‘특성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역의 주력 산업(부산의 해양물류, 울산의 자동차, 제주의 관광 등)과 연계하여 아시아 최고의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 전문 대학으로 거듭나거나, 지역민을 위한 평생 교육이나 직업 재교육에 특화된 기관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식의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 평가 방식 역시 획일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각 대학이 지역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중요한 척도로 삼아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경쟁력 없는 대학들은 과감하게 통폐합하고, 남은 대학들은 뼈를 깎는 혁신을 해야만 합니다. 이는 더 이상 교육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특정 지역에 파격적인 지원을 통해 기업과 대학이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국가적인 차원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방 대학의 위기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모든 인재와 자본이 서울이라는 하나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기형적인 발전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럽더라도 지역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다 함께 상생하는 길을 갈 것인가. 벚꽃은 해마다 다시 피지만, 한번 무너진 지역과 대학은 다시 세우기 어렵습니다. 지방 대학의 추락은 단순히 그들만의 실패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지속 가능성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그 마지막 기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